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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려하고 찬란하게 빛을 내고 있는 성의 조명들 사이로 진행되는 무도회가 한창일 때에, 평화를 깨는 방송의 알람음은 다시금 불현듯 찾아왔습니다. 방송이 울린지 얼마 되지 않아 우리는 우리들 사이에서 무언가 위화감을 느꼈고 곧 스피커에서 흘러나오는 <누군가 없지 않아 솜?> ... 이라는 코튼솜의 말에, 우리는 무도회장에서 벗어나 분주하게 사라진 사람을 찾아다녀야만 했습니다.
바삐 걸음을 옮기자 우리는 등대에서 사라진 사람, 그러니까 어둠 속에 쓰러져있는 초고교급 꿈 수집가 시로사와 유메미와 그 옆에 가만히 서 있는 초고교급 자살컨설턴트 카토리 키리를 볼 수 있었습니다. 그의 주변으로는 형형색색의 꽃들이 아름답게 피어나 자리하고 있었고, 딱딱한 바닥에 선혈이 낭자해 땅을 적시고 있었습니다. 그것들은 일제히 시로사와 유메미의 목에서 흘러나왔으며, 유메미는 피가 묻은 식칼을 손에 쥔 채로... ... 굉장히 평온한 표정을 짓고 있었습니다.
우리는 시로사와 유메미가 '스스로 자신을 찔러 목숨을 끊었다' ... 고 밖에 생각할 수 없었습니다. 그도 그럴게 옆에 있던 카토리 키리가 죽였다고 하기에는 그는 이미 살해당해 홀로그램이 되어 있었고 시로사와 유메미가 칼을 쥔 채 지나치게 평온한 표정을 짓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우리에게는 아직 동기도 주어지지 않은 상태였습니다.
카토리 키리가 시로사와 유메미의 곁을 지키고 있었던 이유를 모르는 우리들의 머릿속에 떠오르는 것은 단 한 가지였습니다. 카토리 키리의 생전 재능이 초고교급의 '자살 컨설턴트'였다는 것 말입니다. 유메미의 자살을 자살 컨설턴트의 재능을 가진 카토리 키리가 도왔다, 꽤 그럴듯한 이야기였습니다만,
코튼솜의 말에 의하면, 카토리 키리는 자살을 도우기는커녕 죽으려는 시로사와 유메미의 앞을 막아섰었습니다. 그러나 타이밍이 늦어 결국 시로사와 유메미의 자살을 막을 수는 없었다고 했습니다. 코튼솜은 시로사와 유메미가 '꿈이 현실로 이루어진다는 일은 없다는 걸 인정할 수밖에 없게 되자 자살을 택했다'고 말했습니다.
코튼솜은 또 다시 자신의 할 말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죽음이야말로 삶의 영원한 안식이자 종말이라고 생각했던 카토리 키리는 죽은 후 기억도 감정도 그대로 남아있는 홀로그램이 되자 자신이 무엇인지 정의하기 어려워졌고, 자부심을 가지고 일하던 '자살 컨설턴트'라는 재능마저도 부정적으로 생각하게 되어서, 자살하려고 한 시로사와 유메미를 막아섰다... 코튼솜은 그렇게 말했습니다.
자살 컨설턴트로서의 신조를 져버린 카토리 키리에게 날카로운 어조로 말을 이어가던 코튼솜은 그대로 뒤를 돌아 등대에서 벗어나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카토리 키리는 코튼솜을 불러세우고, 자살 컨설턴트가 되기 전까지의 기억만 남기고, 자신의 기억을 지워달라고 말했습니다. 코튼솜은 내키지 않아하는 것 같았으나 곧 좋은 생각이 났다며 카토리 키리에게 따라오라고 했고, 의미심장한 코튼솜의 말에도 불구하고... 카토리 키리는 결국 코튼솜을 따라 어딘가로 가버렸습니다. 그러는 와중에 어디선가 내려온 스크린에서 코튼솜과 카토리 키리의 모습이 보였습니다. ... ... ... ...
오랜 시간 대화를 나누던 둘은 사라지고 점점 스크린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게 되었습니다만, 그 전에 얼핏 털썩, 하고 쓰러지는 카토리 키리의 모습이 아른거렸던 것 같습니다.
이상으로,
부디 희망을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