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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고교급 루시드 드리머
★★★★★
기본적으로 루시드드리머란 꿈을 꿀 때면, 이것이 꿈이라는 것을 자각하게 되는 사람들을 뜻한다. 여기서 호시는 조금 다른 케이스인데, 호시는 루시드드리머이면서(꿈이 꿈인 것을 자각) 동시에 스스로의 꿈을 조종할 수 있고(드림 컨트롤), 타인의 꿈에까지 등장할 정도로(!) 영향력이 크게 본인 스스로의 꿈을 조절할 수 있다. 이게 무슨 소리냐면, 호시가 꿈 속에서 '남의 꿈에 나타나서 같이 레몬을 먹고 싶어...' 라고 생각하고 그를 행동으로 실현시킨다면 그 타인은 호시와 함께 레몬을 먹는 꿈을 꾸게 된다는 소리이다. 하지만 호시의 드림 컨트롤 능력은 조금 불안정해서, 호시 스스로가 아는 상대/꿈에 등장하길 원하는 상대의 꿈에는 간섭하는 것이 불가하다. 생판 초면인 영국인과는 꿈을 공유할 수 있지만, 자신의 소꿉친구와는 꿈을 공유할 수가 없다는 뜻. 경찰이 경찰 활동을 정식으로 하여 초고교급 호칭을 받는 것과는 조금 다르게, 호시는 직접 루시드드리머라고 스스로를 생각하거나 루시드드리머로서의 생산적인 활동은 하지 않았지만 그 재능은 충분히 뛰어나다고 판단되어, 루시드드리머라는 호칭이 붙게 되었다.
★★★★★
호시는 본인의 재능보다는 본인 스스로가 더 유명한 특이 케이스이다! 호시가 루시드드리머라는 것은 오히려 호시가 유명해지고 나서 알려졌을 정도이니까 말이다. 티비에도 여러번 나오고 관련 다큐나 잡지에도 종종 등장해서, 전세계적으로 유명하다고 해도 감히 과언이 아닐 듯 하다.
나를 데리고 도망가줘...
초고교급 루시드 드리머 ★★★★★
나미다 하루
なみだ はる/ Namida Haru
나이 / 키 / 체중 / 신발 / 머리색 / 국적 / 혈액형 / 생일
19세 / 145cm / 35kg / 부츠 / 금발 / 일본 / RH-AB / 2월 7일생
Personality
0 두려움, 연약함, 외로움
그러니까... 간단히 표현하자면, 하루는 곧 무너질 것 같아요. 위태롭다... 라고 하면 이해하실까요? 외로움을 많이 타면서도 사람들을 잘 따르던 아이였죠. 가족들과도 사이가 좋았구요. ...아빠의 죽음으로도 충분히 힘들어하던 애예요. 병까지 겹친 지금은 말할 것도 없고요. 애써 담담한 척을 하며 사람들을 대하는 걸 볼 때면... 정말, 뭐라고 해줄 지 모르겠어서... 언제나 친절하게 사람을 대하는 것도 아마 자기가 깨어있는 동안 사람들이 자기를 좋은 사람으로 기억하게 하기 위해서일 거예요. 원래 나쁜 성격은 아니었지만, 초등학교 때 몇년이나 잠들었던 이후로는 조금 더 행동으로 보여줄 수 있는 친절을 많이 베풀게 되었답니다. 하루는... 언제나 억장이 무너지는 기분일 걸요? -하루를 담당하는 심리상담가의 증언 中-
혼자두지 말아줘. 떠나지 마. 나를 잊지 말아줬으면 해. 그냥, 계속, 옆에, 있게 해줘. 응? 난... 난 너무 무서워. 내가 사랑하는 것들을 나 스스로 잊게 될 것 같아서 무섭단 말이야.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이 나를 잊을 것 같아서 두렵단 말이야. 나를 이루던 모든 것들이 날아갈까봐 무너질 것 같단 말이야. 제발 나를 잊지 말아줘... 별처럼, 빛나고 있으니까. 제대로 보고 따라와야 해. 제발 내가 무너지지 않게 해줘. -하루의 일기장 中-
아픈걸까? 아니면 그냥, 스쳐 지나가는 병일까? 잠깐의 스트레스일까? 영원히 날 따라다닐 병일까? 난 계속 내 잠에 발목을 붙잡히게 될까? 벗어날 수... 없는 거야? 그런건 싫은데... 무서워... 무너지고 싶지 않아. 버티고 싶어. 아직 하고 싶은 것이 많아. 잠들기 싫어, 잠이 무서워... 누군가의 기억 속에서 잊혀지는 것은 너무 쓸쓸한 일이야. 난 그걸 감당할 자신이 없어... 감당하고 싶지 않아... -하루의 일기장 中-
요즘은 깨어있는 시간이 잠들어 있는 시간보다 무서워지기 시작했어. 잠들면 일어나는 것을 바라며 버틸 수 있지만 깨어있는 지금은 언제 잠들게 될지 가슴을 졸여야 하니까. 일기를 쓰다가 잠들면 어쩌지? 과외를 받다가 잠들면 어쩌지? 걷다가 잠들면 어쩌지? 이상해. 나는 꿈 속에서도 깨어있지만, 다른 사람들은 내가 잠들었다고 해. 나는 잠들었지만 잠든 것이 아니야. 깨어있으니까. 제대로 기억하고 있으니까, 내 꿈을. 나는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만 잠들어있는 거야. 깨어있는 지금은, 내게... 정말 악몽 같아. 언제쯤 꿈에서 깨어나게 될까? -하루의 일기장 中-
Feature
0
혼자는 아니다
누구도 혼자는 아니다.
나도 아니다
실상 하늘 아래 외톨이로 서 보는 날도
하늘만은 함께 있어주지 않던가.
|김남조, 설일
1 병
클라인 레빈 증후군(일종의 수면장애이자 희귀병, 한번 잠들면 일년에 2~3차례씩 며칠에서 몇 주간 잠들어버리는 병. 오랜 수면기간 때문에 수면 이전의 기억에도 문제가 생기기도 한다.) 을 앓고 있다. 하루의 경우는 특히 병이 깊어, 한번 잠들게 되면 조금의 움직임도 없이 몇년간 깨어나지 못하는 경우도 존재한다고. 보통은 잠들면 일주일에서 삼주 사이까지만 잠들긴 하지만, 분명히 몇년간 잠드는 때도 존재한다. 실제로 어렸을 때 4년 연속으로 잠들어 있던 때가 있었기 때문. 4년간 잠들었다가 깨어난 하루는 잠드는 것을 무서워하게 되었다.
1-1 좋아하는 것?
언제나 멍을 때리는 이유는 필사적으로 참는데도 쏟아지는 잠 때문. 신 것을 먹고(단 것을 좋아하는 하루가 정말 신 것들을 좋아할 리가 없다. 그저 잠에서 깨기 위해 복용하는 것 뿐이다), 각성제를 복용하고, 반짝이는걸 보고, 좋아하는 것까지 하면서 어떻게든 잠들지 않고 생활하려 노력하지만, 잠을 억제하는 것이 영 힘든 모양이다. 그래도 현재는 어렸을 적보다는 병이 많이 호전되어서, 한달 이상 잠드는 일이 드물어졌다. 그럼에도 본인은 여전히 잠드는 것을 두려워하는 터에 잠드는 것을 피하려고 노력한다.
1-2 작은 키
키가 크지 못한 것도 이 병에 있다. 한창 키가 클 때, 그러니까 초등학교 즈음... 4년 연속이나 잠들어버렸기 때문. 학교를 가지 못한건 고사하고, 밥을 먹고 움직일 수도 없었던 터라 키가 클 수가 없던 환경이었다. 4년간은 병원에서 수액을 맞으며 잠들어 있어서 연명할 수 있었지만, 이 사실은 여전히 하루의 큰 스트레스로 남아있다. 유년기를 기억하지 못하는 것과, 키가 크지 않은것, 학교에 가지 못한것 전부.
1-3 앞서는 의욕?
유독 의욕이 앞서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한번 잠들면 아무것도 할 수가 없으니까, 잠들기 전에 무엇이라도 하고 싶다고. 뭐라도 배우고 잠들고, 잊어버리고 싶지 않다고. 잠들었던 시간만큼 뒤쳐져서 과거의 시간을 살고 싶지 않다고. 4년간 잠들고 일어났던 어렸을 적 이후로, 하루는 유독 배운다는 것에 열정이 앞서기 시작했다. 남들을 따라잡기 위해서, 현재를 살기 위해서.
한번 배운 것은 잊지 않기 위해 자신의 일기장에 적어두는 습관이 있다. 언제나 일기장을 가지고 다니는 이유도, 딱히 일기를 쓴다기보단 돌아다니다 새로운 지식을 습득하게 되면 그것을 일기장에 같이 적어두기 때문의 이유가 더 크다.
1-4 약한 몸
죙일 자고, 깨어있을 때는 공부를 하는 생활패턴 때문인지 하루는 거의 움직이지 않는 일이 다반사가 되어 몸 건강이 상당히 악화되었다. 주먹으로 한대 툭 치면 바로 넘어져버릴 만큼 체력이나 힘, 민첩 어느 부분도 빠지지 않고 몸 쓰는 일 모두에 상당히 약한 몸으로 건강이 하락세를 타고 있다... 최근 몸의 심각성을 깨달은 것 같긴 하나, 지금도 별로 움직이는 것은 좋아하지 않는 터라 특별히 움직이거나 하지는 않는다고. (...)
1-5 기억
기본적으로 꿈을 꿈이라고 인지하고, 상황을 이용해 남의 꿈까지 영향을 미친다는 점에서 하루는 한번 잠들었다 깨어나면 잠자는 공백기동안의 기억이 없는 상태가 아니라, 꿈 속에서 있었던 일ㅡ남의 꿈에서 본 풍경, 자신의 꿈에서 본 풍경 등...ㅡ을 기억하는 상태가 된다. 자기가 잠들었었다는 것은 잠들자마자 알아채고, 얼마의 시간이 흘렀는지는 깨어나서 알게 된다. 꿈 속의 풍경을 기억하지만, 자신이 개입한 꿈의 주인에 대해서는 전혀 기억하지 못하게 된다. 그리고 한번 잠들었다 일어나면 알던 사람중 한명을 완전히 잊어버리게 된다. 그 사람이 학원 선생님이던 스쳐 지나가던 얼굴만 아는 사람이던, 그 사람의 존재까지 완전히 잊어버리게 되는 것이다.
2 재능
하루에게는 이 병이 매우 큰 스트레스이다. 그래서 당연히 이 병 덕에 얻게 된 자신의 재능 역시 그닥 탐탁치 않게 여기는 것도 당연하다. 그녀가 키보가미네의 입학장을 승낙한 것은 오로지 새로운 것을 배우고 싶다는 의지 때문이었으리라.
2-1 재능을 얻게 된 계기
처음 하루가 잠들었던 것은 하루가 초등학교 1학년 즈음이었을 때. 그 전까지는 하루도 평범하게 몇시간씩만 잠들고 정상적인 생활을 할 수가 있었다. 그러던 중 자동차 사고로 죽은 아버지의 죽음에 대한 스트레스 때문인지, 갑작스럽게 증후군이 발병하며 하루는 약 2주간 잠들게 되었었다. 그때 빛을 낸 것은 하루의 특이 체질. 태생적으로 꾸는 모든 꿈이 꿈이라는 것을 자각할 수 있었던 하루의 천연적인 능력 덕에, 하루는 자신의 꿈 속에서 이것이 꿈임을 2주간 인지하게 되었다. 보통은 한두시간 꾸고 마는 꿈이었지만, 아무리 시간이 흘러도 꿈에서 자신이 깨어나지 않자 하루는 또 다른 재능이었던 타인의 꿈에 간섭하기로 남에게 도움을 청하게 되었다. 물론 아예 모르는 사람에게만 꿈 공유가 통한다는 것이 단점이었으며, 하루가 나오는 꿈을 꾼 사람은 생판 남이었기에 실질적으로 하루가 타인에게 도움을 받는 것은 불가능했다. 하루 역시 2주 뒤 깨어나긴 하였지만 말이다.
그러나 이 사람이 하루가 나오는 꿈을 이상하게 여기고 스레를 세우며, 하루가 나오는 꿈에 대한 괴담 아닌 괴담이 퍼지며 하루가 세간에 알려지기 시작했던 것이다. 몇년간 꾸준히, 오래 잠들며 수천명의 사람들의 꿈에 등장해 자신을 깨워달라고 부탁하던 하루는 도시전설 급의 사람으로 소문이 퍼져버렸고, 결국 실체가 밝혀지자 몇년간의 재능을 인정받고 초고교급 루시드드리머로서 인정받아버렸다.
하루는 본래 깊게(24시간 이상) 잠들지 않으면 꿈을 거의 꾸지 않았으며, 설령 꾸더라도 타인의 꿈에 간섭하거나 타인의 꿈과 자신의 꿈을 공유하는 것은 불가능하였다. 그러나 증후군이 발병하고부터 그러한 것이 가능해진 터라, 하루는 자신의 재능을 병의 흔적이라 생각하며 그닥 달갑게 여기지 않게 되었다.
3 두려움
천성이 그런 것도 있지만, 더욱이 아버지의 사망 이후로 잊혀지는 것과, 잊는 것에 대한 절대적인 두려움을 가지게 되었다. 자신이 누굴 잊는 것부터 자기가 누군가에게 잊혀지는 것까지 전부 무서워하는 습성 탓에, 자신의 지병을 더욱이 싫어하게 되기도 하였고. 갈수록 호전되고 있다고는 해도 인생의 1/4 이상을 잠으로 보냈던 터라, 사람의 온기를 느낄 수 있는 가벼운 스킨십을 좋아하게 되었다고 한다. 하루가 현재까지도 계속 꿈 속에서 누군가를 찾아가는 이유도 누군가가 옆에 있는 것만으로 안정할 수 있으니까 이고.
3-1 가명
사실 사용하는 가명도 사람들이 더욱 자신을 기억하기 쉽도록 사용하게 된 것이다. 세간에 처음 존재를 알렸을 때도 자기소개를 호시라고 하여, 사람들은 대부분 하루의 본명을 호시라고 알고 있을 정도. 친구나 가족같은 최측근이 아닌 이상 모든 사람들은 호시를 호시라고 생각하고 있다. 호시는 이 사실에 나름 만족하는듯. 사람들이 밤하늘의 별을 볼때 날 떠올려주면 기쁠 거야.
4
모든걸 보고 있었습니다. 그저 간섭할 수 없었을 뿐이에요. 그래서 하염없이 도와줘, 라고 했던 것 같습니다. 꿈 속에서요.
-하루의 일기장 中-
THEME-

STORY
처음에는 그냥 평범한ㅡ가정 형편을 평범이라고 정의할 수 있다면을 가정한 단어선택이지만ㅡ가정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부모님의 수입은 그럭저럭, 사는 아파트도 그럭저럭 등등... 가족 간의 화목함은 일반 가정보다 조금 더 뛰어난 편에 내 성적이 꽤나 좋았다는 것만 뺀다면 굳이 서술하지 않은 것들도 다 그럭저럭 평범. 우리 집은 무엇 하나 특출나게 눈에 띄는 것이 없는 가정이었지만, 그래서 나름 행복했었다고 기억한다.
그래서인지 내가 초등학교를 들어가기 전, 그러니까 나의 유년기에 대한 좋은 기억들은 꽤나 많이 남아있는 편이다. 아빠의 얼굴이 이제는 조금 흐릿해졌긴 하지만,... 같이 꽃밭에 가거나, 놀이공원에 가고, 미국 여행도 가고, 겨울 밤하늘이 내다 보이는 호수에 가서... 호수에 가서 뭘 봤더라? 무슨 동물이었지? 호수 다음에는 어디 갔지. ... 다시 정정한다. 적어도 내게 남아있는 유년기의 기억들은 나쁘지 않은 편이었다.
그나마 남아있는 기억들이 끊기는 기점은 내가 초등학교에 입학한지 반년정도 지났던, 초등학교 1학년 때. 행복이 무너지는 것에는 큰 전환점이 필요하지 않았다. 견고한 행복에 칼집을 내면 그것이 차츰 벌어지며 행복은 무너져 내렸으니까. 그리고, 우리 집의 행복이 무너지는 계기는 아버지의 사망이었다.
그 계기라는 것은 갑작스런 사고였다. 언제나처럼 평범하게 회사 일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시던 길에, 우연히 브레이크가 고장난 자동차와 부딪혀 즉사. 당연히 돌아오실 줄 알았던 아버지를 기다리던 엄마와 나의 평화는 아버지의 사망 소식을 들은 순간 깨져버렸다.
물론 어머니는 여전히 상냥하셨다. 아니, 오히려 힘들어하던 나를 위로해주며 예전보다 배로 더 날 챙겨주셨다. 직장까지 관두시고 늘 내 곁에 있어주셨으니까. 하지만 어머니는 나의 고통이 증가하지 않도록 막아주시던 역할이었을 뿐, 나의 스트레스는 줄지 않았다. 더 이상 아버지를 볼 수 없다는 말과 그에 따른 나의 감정, 사람들이 수근대는 소리, 내가 받는 시선. 모든 것이 아직 어렸던 나에게 감당하기 벅찬 것들이었다. 그래서였던가? 그 즈음, 처음 내 증후군이 발병하였던 게. 간단히 수식하자면 일종의 수면장애인 그 증후군은 고통에 서서히 갉아먹혔던 나를 완전히 집어삼켜버렸다.
발병은 빠르게, 죽음처럼 예고 없이 내게 다가왔다. 처음 쓰러져서 2주간 잠들어있었던 것은 아버지가 돌아가신지 약 두달 반이 지났을 무렵의 늦가을이었다. 나는 초겨울에 깨어났다.
어머니는 내가 부엌 바닥에 엎어져 있길래, 죽은 줄 아셨다면서 눈물을 터트리셨다. 나는 그때까지 2주라는 시간이 지났던 것을 자각하지 못했다. 몇시간에 걸친 의사 선생님의 설명을 듣고서야 나는 깨달았다. 나는 2주간 잠들어 있었구나. 희귀한 병이라는 이야기를 들었고, 집에 돌아갈 때까지 어머니의 멈추지 않는 눈물을 보면서 나는 생각했다. 나는 내가 사랑하는 사람을 몇번이고 더 울리게 되겠구나.
... 사실 2주간 잠들어있었다는 것을 자각한 건 병원에서 깨어난 뒤였으나, 내가 잠들어서 꿈을 꾸고 있었다는 것은 잠이 들고 꿈을 꾸게 되자마자 단박에 알아챘었다. 원리는 모르지만, 꿈 속에서 횡단보도를 기다리던 그 평화로운 풍경이 지나치게 꿈만 같았다고 생각했었다... 고 기억한다. 그리고 실제로도 꿈이었고. 하무튼간에 꿈이라는 것을 자각한 이후 그 횡단보도를 건넜었는데, 횡단보도를 건넌 이후 딛은 그 건너편의 세상은 내가 알던 우리 동네가 아니었다. 간판도 모두 영어에, 여기저기 영어 전단지가 돌아다니는 곳. 영국이었다. 이상하네, 영국엔 와본 적도 없는데... 이 모든게 너무 생생하잖아. 마치 영국인이 된 것만 같아. 횡단보도를 건너서 다른 나라로 갈 수 있었던가...? 어렸던 나는 생각도 좁았었고, 당연히 그것이 누군가의 꿈 안이라는 것은 알지 못했다.
몇날 며칠을 걸어다녔던 것이 생각이 난다. 지금 다시 계산해 보면, 2주일의 2/3쯤은? 다른 1/3은 처음에 영국 구경을 하며 여기서기 쏘다닌 시간들이었고. 여하튼 일주일 이상이나 넓은 땅을 계속 걷고 걸어도 아는 사람이 나오지 않자, 꿈 속에서의 나는 결국 울며 바닥에 주저앉고는 눈에 띄었던 사람에게 도와달라고 눈물로 부탁을 했었다. 꿈에서 깨어날 수가 없어요, 도와주세요. 나를 데리고 나가주세요. ... 그리고, 이 말을 한 순간 나는 잠에서 깨어나게 되었다.
도와달라고 꿈의 주인에게 부탁해서 일어난 것은 아니었다. 그냥 잠들어있기로 한 2주가 지났을 뿐이고, 때마침 꿈의 주인이 일어날 기상시각이기도 하였고,... 하지만 결과적으로 나는 깨어나게 되었다. 일어나자마자 2주간 잠들어 있었다는 황당항 이야기를 듣긴 했지만... 그렇게 오래 걸었는데 어떻게 2주가 흐른 것을 눈치채지 못했냐고? 상식적으로 긴 꿈을 꿀 때면, 꿈이 길다고 생각하지 잠든 기간이 2주라고는 생각하지 않으니까. 내 삶이 이렇게 비상식적으로 변할 걸 알았다면 이때 비상식적인 사고방식을 키워야 했다.
깨어난 이후로 학교는 더이상 나가지 못하게 되었다. 지속된 치료와 약물 처방을 받아야 하는 때문도 있고, ... 사실 병원에 반쯤 고립된 가장 큰 이유는 고집을 부려서 나갔던 학교 체육시간에 잠들어 이틀 후 깨어났던 적 때문이었다. 그 대신 병원의 심리상담사 언니와 과외 선생님과 함께, 배우지 못한 것을 배워나가게 되었다. (병원에서지만.) 어렸을 때부터 학구열이 뛰어났던 나는 열심히 밀린 세간의 소식들과 학교 진도를 따라잡았고, 호전되는 기분에 따라 나의 병도 한번 발병되고 사라진게 아닌가 싶을 정도로... 몇년간 잠잠해지게 되었다.
다시 병이 발병한 것은 초등학교 4학년 때. 초등학교 2학년부터는 학교도 다시 나가고, 시험도 치며 한창 다시 안정적인 생활을 다듬고 있었을 때였다. 계기는... 뭐였더라. 사실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 무렵에는 나를 화나게 만드는 것들이 너무 많았기 때문이다. 어머니의 건강 악화 때문이었나? 심리상담가 선생님의 동생이 죽은 것을 내 아버지와 겹쳐보아서였나? 그것도 아니면 한문제 틀린 시험지를 놀림받아서였나? 이맘때의 기억은 다 뒤죽박죽이니까 하나하나 기억해내는 것이 불가능하다. 어쩌면 저 세가지 다일 지도 모르고. 중요한 것은, 내가 초등학교 4학년 여름 무렵 다시 잠들었다는 것이다. 그간의 2년은 적당히 2일 정도만 잠들거나 방학에 1주일 잠드는 것이 다였지만, 그때는 달랐다. 3일간 나누어 보는 시험이 끝나던 첫번째 날, 나는 집에 도착하자마자 쓰러져 4년간 잠들게 된다.
...아니지, 저기에선 잠들게 되었다가 맞는 표현인가? 여하튼, 서술한 그대로 나는 4년간 잠들었다. 꼬박 4년간. 나는 이번에도 잠이 들자마자 이것이 꿈임을 직감했다. 또 다시 횡단보도에 내가 서있길래, 망설임 없이 그 횡단보도를 건넜고. 이번 꿈은 지난 꿈보다 길었다. 훨씬 길었다. 현실 세계보다 꿈 속 세계가 더 시간이 빨리 흐른다고들 하지만, 그래도 그 꿈은 지나치게 길었다. 하긴, 4년이니까. 처음에는 마냥 꿈에서 깨길 기다리며 첫번째 횡단보도가 나를 이끌어준 세계에서 약 한달단 머물렀다. 그러다가 지루함을 참지 못한 나는 그 세계의 끝에 있는 다른 횡단보도를 건넜다.
한 횡단보도마다 각기 다른 세상이 펼쳐졌다. 걷다가 지쳐지면 누군가에게 도움을 청하고, 도움을 청하자마자 흐려지는 세상을 잠시 기다려주면 스윽, 하고 새 횡단보도가 나타나는 식이었다. 무섭기도 하고 재미있기도 하였으며, 평생 가보지 못할 세계들은 체험하는 기분이 새로웠고, 몸상태가 악화된 어머니가 걱정되었다. 여러가지 감정을 품으며 나는 4년의 꿈에서 깨어나기까지, 약 삼천육백개의 횡단보도를 건넜다.
다시 깨어났다. 깨어난 곳은 원래의 집과는 사뭇 다른 곳이었는데, 내 팔에는 링겔이 꽂혀져 있었고, 집 주변 풍경은 영 꽃밭이었다. 어딜 봐도 원래 살던 매연 투성이의 도쿄-아파트존은 아니었다. 새 집이었다는 사실은 때마침 새 수액을 가지고 들어온 어머니가 깨어난 나를 보고 늘어놓으시던 말 덕에 알아차릴 수 있었다. 3년간은 병원에 있다가, 병원비가 감당이 힘들 수준이 되자 시골의 집을 하나 새로 사서 이곳으로 요양 겸 이사를 왔다고. 그 말을 하던 어머니의 표정은 많이 수척해 보이셨다. 누굴 위한 요양인 건지...
내가 4년간 잠들어있었다는 이야기를 전해들었을 때, 나는 생각보다 놀라지 않았다. 놀라기엔 너무 어이가 없었기도 하고. 믿을 수가 없었기도 했다. 4년간 잠들다니 단박에 믿을 만한 이야기는 물론 아니긴 했다. 그러나 납득해야 할 사실이었다. 나는 4년간 잠들었고, 내 친구들은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중학교로 진학하며 내년에는 졸업반 준비를 할 것이고, 나는 여전히 초등학교 4학년에 머물러 있고... 그건 내게 꽤 큰 무력감을 안겨주었다. 그 사실을 감당하는 것이 무서웠고, 따라잡을 수 있을까 걱정했고, 크지 못한 키에 좌절했으며, 위태로움을 느꼈다.
그래서 깨어난 뒤 내가 처음 했던 일은 친구들과 전화하기, 밥 먹기, 밖에 나가기 등등이 아닌, 4년간 밀렸던 세상 소식 접하기였다. 어떻게든 세상을 따라잡아야 한다고 생각했었나 보다. 유명 연예인의 죽음, 교통사고, 그 해의 초고교급들, 그 외 각종 기삿거리들. 읽어내리는 데는 꼬박 2주일이 걸렸다. 잠들지 않도록 각성제를 몇통씩 복용하고, 반짝이는 것들을 계속 구경하고 수집하면서 잠이 올 틈이 없게 몸을 무리하게 움직이기도 하고. 그러면서 2주가 지나자, 나는 할 일을 잃어버리고 말았다. 갈 학교도, 선생님도, 병원도... 내게 남아있지 않았기에. 파악하는 순간에도 빠르게 스쳐지나가는 세상을 읽어내리던 내게 남은건 잊혀지기 싫다는 마음과 두려움, 두가지 뿐이었다.
나는 그때부터 잠드는 것이 두려워졌다.
이번에 잠들면 언제 또 깰지 모르는 것이 원인이었다. 또 4년을 잠들어있지는 않을 터지만, 그래도 공포란 것은 어쩔 수가 없는 것이었다. 계속 잠자는 것을 피하면 더 오래 잠들게 될 것이라는 것도 알았으나 필사적으로 잠에서 도망쳤고. 그렇게 몇주를 버티다 한번 쓰러져서 일주일간 몰아서 잠을 자고는 했다. 그렇게 두달, 세달, 다섯달을 보냈다. 잠에서 도망치는 채로 16살을 맞았고, 그 해도 그저 공부를 하고 잠을 피해다니다 몇주씩 잠드는 것을 반복하며 소비하게 되었다.
이제 내 인생에 구제는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아니, 아니다. 굳이 구제가 아니더라도, 잔잔한 우물에 던져지는 돌이라도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어머니도 나를 포기하곤, 몸만 건강히 지내라고 당부하셨을 정도니까 말이다.
그러나 고등학교 1학년... 아니, 17살이 된 나는 수면 위로 떠오르게 되었다. 더 자세히 짚고 넘어가자면, 원래도 유명했던, 수심 5m의 위치에 살던 물고기인 나를 수면 위로 낚아채 올린 것이었지만. 사실 내가 유명하다는 것은 어렴풋이 알고 있었다. 그 사람들이 내 정체를 추측하는 영상들은 끝도 없이 있어서, 일주일간 밤을 새서 영상을 돌려봐도 시간이 모자랄 정도였으니까. 하지만 굳이 내가 나서서 내 정체를 밝혀야 할 필요도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새로운 인간관계를 쌓는 것은 무서웠다. 어차피 무너질 관계, 있는 것만이라도 지키자라고 한창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새로 온 간호사ㅡ라는 직책이지만 가정부같은 사람이었다ㅡ가 나를 알아보고는 나의 실존 여부와 간단한 신상 정보를 세간에 올려버린 것이 화제가 되었다.
이날 이후로는 정말 일상이 피곤해졌다. 일상이 불가할 정도로 카메라가 몰려와서, 반쯤은 불면증을 겪고 있던 나에게 차라리 다시 잠들고 싶다고 생각하게 만들 정도였다. 그 가정부는 어머니가 내쫓았지만, 기자들은 죽자살자 달려들었다. 결국 나는 나의 일상을 되찾기 위해 수십개의 인터뷰에 응할 수 밖에 없었고, 몇달간의 플래시를 견디며 카메라들 앞에 서게 되었다.
언론은 꿈 속에서 사람들을 만난다고 고백한 나를 루시드드리머라고 소개했다. 루시드드리머? 난 그냥 병 하나 앓는 환자일 뿐인데... 라고 생각은 했지만, 말해봤자 소용은 없을 것 같아서 굳이 입 밖으로 내어 언급하지는 않았다. 나이, 사람들을 만나러 다니는 이유, 방식 등등이 캐묻혔고, 그 질문들에 천번째쯤 대답했던 것 같다.
모든 기자들의 마지막 질문은 같았다. 이름이 뭐예요? 그러면 나는 나를 호시. ... 호시아이. ...라고 소개했다. 내 정체가 밝혀지기 전에 돌려보던 영상 중 몇개가 사람들이 붙인 나의 새 이름에 대해 소개해준 덕에, 나는 인터뷰를 하기 전 내 또 다른 이름을 알 수 있었고, 사람들이 내 이름을 묻자 나는 나를 호시아이라고 소개하게 할 수 있었던 것이다.
사람들의 관심은 피곤했지만, 나쁜 점만 있던 것은 아니었다. 우선적으로 그들은 나를 잊지 않아줄 것이라는 게 중요했다. 내가 그들을 잊더라도 그들은 나를 기억해준다. 그러면 나도 그들을 기억하려 노력한다. 누군가를 잊고 잊지 않는다는 것은 내게 큰 작용점으로 다가왔다. 나는 잊혀지는 것과 잊는 것에 압도적인 공포를 가지고 살아왔다. 잠이 들면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습이 흐려지니까 잠 역시 두려워하게 되었다. 그러던 와중, 나의 병조차도 기억해주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은 기적에 가까운 기분으로 내게 다가왔다. ... 고 기억한다.
내 17살은 16살과는 또 다른 의미로 빠르게 흘러갔다. 물론 17살때도 잠든 적은 많았지만, 기적적으로 모두 일주일, 혹은 일주일 미만으로 짧게 짧게 잠들어 일상생활ㅡ이라고 부르기도 뭐했지만ㅡ에 차질을 주진 못했다. 일주일 정도야 독감이라고 핑계대면 될 정도로 내게는 짧게 느껴지기도 했고.
빠르게 지나간 17살의 한 해만큼 18살의 한 해도 빠르게 다가왔다. 18살의 해는, 음, 요약하자면 별로였다. 나는 작년의 짧은 잠들이 무색하게 오래 잠들었고, 신년부터 내 생일이 지날 때까지 두달정도 쭉 잠들었다가, 깨어난지 한달만에 또 다시 한달을 잠들어 있있다. 총합 세달 반을 잠들었다가 맞은 4월 무렵, 나는... 아니, 우리 집 우체통은 키보가미네로부터 입학장을 받게 된다.
왜 이게 작년이 아닌 올해 도착했는지 생각해보다가, 올해의 내가 세달 반동안 제발 날 구해달라 천명 가까운 인원에게 부탁을 한 것이 공적으로 인정받았단 결과를 도출해내고는 생각하기를 그만 두었다. 깨자마자 이런 것을 생각할 겨를이 있겠냐마는, 나는 당연하게도 이 입학장을 승낙할 생각이었다. 과외로도 따라잡기 벅찬 몇년의 진도들을 뒤로하고, 사사로운 잡지식들을 동급생인 초고교급들 곁에서 배우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고 생각해서였다. 내가 내릴 수 있는 가장 이성적인 생각이기도 했고... 생각해봐, 그 키보가미네이다. 인생의 1/4를 잠으로 보내던 나라도 키보가미네에 대해서는 모를 수가 없었다. 사실 나는 내 재능이 나의 병이 있어서만 성립될 수 있다는 사실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다만, 새로운 것을 배우고 싶고,... 다시 일어나려 노력해보고 싶다는 의지가 그 탐탁찮음을 이겨냈기에, 초고교급 루시드드리머라는 새 명찰을 달고 키보가미네에 입학하게 되었다. 입학 시기는 이미 조금 지났지만, 지병 때문이니 이해해 주실거란 마음을 품고.
첫 한달은 꼬박꼬박 학교에 나왔다. 기적적으로 내가 그 한달간은 2일 이상 잠든 적이 없었다. 신이 날 도우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오만이었다. 신도 오만이라 생각했는지, 학교에 나가기 시작한지 딱 1달이 지난 무렵, 나는 다시 잠에 빠지게 되었다. 4월 중반에 들어가 1달을 채우고ㅡ5월 중반ㅡ잠들었다가 1주 전에 깨어났으니까... 약 8달간을 또 연속으로 잠들었었다. 깨어나자마자 한 생각은, 그만하게 해줘. 그만 잠들게 해줘. 깨어나고 잠드는 것이 무서워졌어. ... 그 다음에 한 것은, 키보가미네에서 온 안내서를 확인하는 것. 피에니섬이라는 곳으로, 재능 계발과 친목 도모를 목적으로. ... 여행을 간다고?
이성적으로 생각하면, 승낙하면 안되는 제안이었다. 나는 집 밖으로 나가서는 안되는 환자다. 몸 상태를 핑계대면 빠질 수도 있었을 것이다. 8달간 잠들었다가 1주 전에 일어났으면서, 언제 쓰러질지 모르는 몸을 이끌고 여행을 간다는 것은 완전히 제정신이 아닌 행동이었으니까. 그러나 더이상 잠드는 것을, 혼자를, 고독을 버틸 수 없던 나는 결국 그 안내서에 서명을 해버리고 만다.
... 후회할 거야. 후회해도 괜찮겠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