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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고교급 조향사
★★
여러 가지 향료를 조합하여 향을 만들어내는 직업이다.
우리 주변에서 쉽게 살펴볼 수 있는 향수, 디퓨저, 캔들 등의 향이 나는 것들에 향을 적용해내는 일. 헨쇼는 향수를 대량으로 만들어낸다기보다는 주로 소량으로 주문자에 맞는 향을 만들어내는 일을 한다. 헨쇼는 주문자가 원하는 이미지의 향을 상상하고, 그에 맞는 ,에센셜 오일을 선택에서 고객이 직접 향수를 만들 수 있도록 이끌어나가는 역할을 했다. 향수라고 하면 알코올 냄새가 진동을 하는 진한 향수를 상상하곤 하는데, 헨쇼는 향에 대한 센스가 뛰어나서 처음 향수를 접하는 사람에게도 거부감 없이 향수를 즐길 수 있는 향을 제작하였다. 그래서인지 고객들의 만족도가 높은 편이었다.
가끔씩 대형 업체와 계약을 해서 대량으로 향수를 제작하곤 한다. 헨쇼가 만들어내는 상품들은 항상 히트를 치고, 365일 꾸준히 수요가 있는 제품들이다. 하지만 계약할 때 제품 이미지가 헨쇼의 마음에 조금이라도 들지 않는다면 바로 계약을 퇴짜 내버린다. 어렵게 계약을 한다고 하더라도 헨쇼의 사교성이 좋지 않아서 회사 측과 트러블이 생겨 헨쇼 쪽에서 계약 해지를 하는 편이 대부분이다. 그러나 문제 덩어리 헨쇼를 이겨내면 회사 측에서 돈을 무지막지하게 벌어먹기 때문에 업계 측에선 헨쇼를 '황금 돼지 똥고집'이라고 부른다.(;)
가자, 나락까지 함께 해줄게.
초고교급 조향사 ★★
카스가이 헨쇼
かすがい へんしょ / Kasgai Hensyo
나이 / 키 / 체중 / 신발 / 머리색 / 국적 / 혈액형 / 생일
19세 / 180cm / 67kg / 단화 / 흑발 / 일본 / RH+AB / 2월 2일생
Personality
“ 결단력 즉흥적 이성적 ”
헨쇼는 소신이 뚜렷했으며, 그에 걸맞게 과단성 또한 남들 부럽지 않게 뛰어났다. 절대 다른 사람들의 의견을 따라가지 않으며 자신이 옳다는 생각이 들면 즉흥적으로 행동에 옮기며 살아가는 사람이었다. 다른 사람의 의견을 전혀 들으려고 하지 않으니 헨쇼가 할 수 없는 것이 하나 있었는데, 그것이 바로 단체생활이다. 누군가의 아래에 들어가거나, 누군가와 함께 생활을 하게 되면 무조건적으로 남들과 맞춰가야 하기 때문에 어떠한 집단에 소속되어있는 것은 헨쇼가 할 수 없으면서, 헨쇼가 가장 싫어하는 것이었다. 더불어 헨쇼는 비도덕적이면서 비양심적인 사람이다. 만일 헨쇼가 도덕적이면서 양심적인 사람이었다면 어느 집단에 소속되어있을 수도 있었을 테지만, 헨쇼가 생각하는 가치관과 그 가치관에 따라서 행동하는 모든 것들이 전부 대중적인 사람들과는 전혀 달랐기 때문에 누군가와 함께한다는 것은 굉장히 어려운 일이었다. 헨쇼에게도 힘든 일이며, 헨쇼와 함께하는 다른 사람들에게도 힘든 일이었다.
또한 헨쇼는 즉흥적인 사람이었다. 앞서 말했듯이 자신이 옳다는 생각이 들면 그것을 무조건적으로 행동으로 옮겨버렸다. 남들이 그 행동을 어떻게 생각하는지는 자신과 전혀 관계없다고 생각하였으며, 자신이 어떠한 행동을 해서 남들에게 끼치는 영향을 전혀 생각하지 않았다. 남에게 이득을 보여주던, 손해를 보여주던 그저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굳건히 실천해나갈 뿐이었다. 헨쇼는 하루살이처럼 바람이 불면 바로 꺼져버릴 등불 같은 상태였지만, 더 이상 잃을게 없는 사람처럼 등불이 꺼지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어차피 내가 가만히 있는다고 오래 사는 것도 아니고, 죽을 때쯤 되어서 이것 좀 해볼걸... 하고 후회하는 것보단 그냥 하루하루를 위험하더라도 후회 없이 살겠다는 헨쇼의 생각이었다.
즉흥적으로 뭐든지 도전해다 보니 헨쇼에게는 취미 같은 게 많았다. 요리, 재봉 같은 소소하고 손으로 할 수 있는 만들기 같은 느낌의 취미. 헨쇼에게는 꼼꼼하다는 느낌의 사람이었다. 휴일에는 맨날 이것저것 해보다 보니 이제는 경험치가 쌓여서 손으로 하는 모든 것이라면 시켜보기만 해도 잘 할 것이다. 사실 조향사라는 일도 처음에는 취미였지만, 어쩌다 보니 이렇게 일이 커져서 초고교급이라는 칭호까지 얻게 되었다. 조향처럼 길고 오래 이어지는 취미가 있는 반면에 짧고 금방 포기해버리는 취미도 존재했다. 예를 들어서 그림이라던가.. 그림이라던가.. 그림이라던가..
STORY
※주의 : 전염병, 마약, 사망, 절도 및 소매치기 소재가 있습니다.
3월 29일
전염병 같은 게 마을에 돌기 시작했다.
항상 봄이 되면 먹을게 없어서 굶어 죽어나가는 사람이 생기기도 하는데, 올해는 굶어죽는 사람은 없고 고통스럽게 죽어나가는 사람들의 비명소리만 들려오는구나.
가족들이 걱정이다. 지난겨울이 너무 추워서 전부 몸이 정상이 아니다.
나와 동생은 빈민가, 그러니까 돈 없는 사람들이 모여사는 곳에서 태어났다.
우리 집은 작은 비닐하우스였고, 그곳은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집이라기보단 그저 눈 비를 피할 공간이었다.
음식은 항상 시장가로 가서 도둑질을 해서 가져왔고
가끔씩은 사람들에게 무릎을 꿇어가면서까지 돈을 구걸해야 했다.
나는 모든 사람들이 처음에는 이렇게 힘들게 사는 줄 알았다.
4월 11일
저번 주에 음식을 가져오려고 시내에 다녀왔었다.
음식을 잔뜩 들고 집에 오니 가족들의 상태가 별로 좋지 않다.
항상 달고 살던 기침의 빈도가 잦아졌고 동생에게는 미열이 났으며, 어머니와 아버지는 하루 종일 잠만 주무셨다.
주변에 사는 사람들의 상태를 보니 전부 똑같았다.
전부 죽은 듯이 잠을 자고 있었다.
나만 멀쩡한데, 내가 가족들을 도와야겠다는 생각에 깨끗한 물을 가져오고 음식을 차려놓았다.
그런데 어머니는 내게 집을 나가라는 말을 하셨다.
우리는 언제나 고달픈 생활을 하면서 살아왔다.
빵 한 조각도 나눠먹고, 언제는 빵 한 조각을 일주일 동안 네 명이서 나눠먹은 적도 있었다.
여름에는 항상 장마가 오고 강이 불어나면 물은 흙탕물이 됐다.
그러면 깨끗한 물은 꿈도 못 꾸고 내리는 빗물을 그릇을 한가득 채울 때까지
기다렸다가 그 물을 마시기도, 그 물을 이용해서 몸을 씻기도 했다.
그렇게 나는 8년 동안 그런 곳에서 자라왔다.
발바닥을 털면 흙먼지가 끊임없이 나오는 곳에서.
4월 14일
집에서 나온 지 3일이나 지났다.
어머니는 내게 깨끗한 옷을 입혀주셨고, 손에는 과자 하나 정도 사 먹을 수 있는 돈과 함께 나를 꽉 안아주셨다.
나는 병으로부터 안전한 곳으로 대피를 했다.
하지만 시내에 나와서 계속해서 약을 찾아다녔다.
우리 가족은 행복해야 되니까, 건강해야 되니까,
근데 병원에 가서 계속 열이 나고 잠만 쏟아져요,라고 말하면 그냥 간단한 감기일 거라는 말만 해준다.
간단한 감기가 아닌 것 같은데.
그때는 뭐가 뭔지 몰랐다.
거지가 무엇인지, 사람들이 흔히 말하는 쓰레기가 무엇인지.
나는 아무것도 몰랐다.
하지만 지금은 알고 있다.
사람들이 흔히 말하는 거지와 쓰레기는 우리를 칭하는 말이었다.
그 사람들에게 우리가 죽어간다는 것은,
쓰레기차가 와서 쓰레기를 담아 가는 것과 똑같은 거였다.
4월 16일
약을 찾았다.
안 아파지는 약이란다.
하나만 먹으면 세상이 무너져도 살아남을 수 있을 정도로 건강해진다고 했다.
하루에 한 알씩 꼬박꼬박, 일주일을 먹으면 가족들이 다 행복해질 거라 했다.
나는 집으로 다시 돌아갔다.
4월 17일
정말로 가족들은 아파하지 않았다.
기침은 여전히 달고 살았지만 가족들은 전처럼 죽은 듯이 잠을 자지 않았다.
아픈 얼굴도 그대로였지만 가족들은 나에게 전혀 아프지 않다고 말해주었다.
앞으로 6일이다.
이렇게 6일만 견디면 우리 집은 평화로워질 것이다.
지금 생각하면 정말 내가 바보였던 것 같다.
새하얗게 질린 얼굴을 하고 있는데 아프지 않다고 말하는 가족들을 굳게 믿었다.
나아질 줄 알았다.
이제 혈색도 돌아오고 환하게 웃어줄 줄 알았다.
근데 왜 시간이 지날수록 얼굴은 더 퍼렇게 변하고
허공을 보면서 웃음만 짓는 것일까?
그때는 그걸 이상하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웃음을 지어도 아, 이제 아프지 않아서 짓는 거구나. 하고 넘겼던 내가 바보였다.
아니 더 멍청했던 건 사람들이 쓰레기에게 주는 약이 진짜 약인 줄 알고 덥석 받은 나였다.
또 어렸던 나는 마약이라는 것을 알지 못했다.
4월 21일
이상하다.
약을 꼬박꼬박 먹고 있는데 왜 가족들은 전부 불덩이고 잠에서 깨어나지 않는 걸까?
앞으로 이틀만 더 버티면 되는데.
그냥 잠자는 거라고 생각하고, 나도 같이 잠에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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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뒤로 나는 잠에서 깨어났지만, 가족들은 잠에서 깨어나려고 하지 않았다.
새하얗게 질려있는 얼굴을 바라보면서 흔들어 깨우다가 다시 이불을 덮어주었다.
아직 더 자고 싶은 거구나.
해가 질 때까지 일어나지 않아서 내가 직접 입에 약을 넣었다.
앞으로 하루만 더 버티면 된다.
가족들을 옆에 두고 나는 다시 잠에 들었다. 시끄럽게 돌아다니면 날 병도 안 날 테니까.
나라도 가만히 있자.
다음날이 되어서야 참고 있던 눈물을 흘렸다.
믿고 싶지 않았다. 나만 눈을 뜨고 있다는 것을 믿고 싶지 않았다.
가족들을 마을 사람들이 묻어주었다.
그리고 나는 한 삼 일 동안 고열에 시달렸다. 나도 이제 죽는구나, 싶었는데 그냥 그러고 말았다.
그 이후로 시내를 계속 떠돌아다니다가, 경찰서에 가고. 그리고 보육원에 맡겨졌다. 밤마다 보육원에서 뛰쳐나와 수차례 소매치기를 하고 도둑질을 한 뒤에야 어느 정도 돈이 모였다. 그리고 처음 샀던 물건이 향수였다. 보이는 사람들마다 나를 보고 냄새가 난다고 코를 막았으니까, 이걸 하면 더 이상 냄새난다고 나를 싫어하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다. 돈을 계속 모으면서 보육원에서 나올 틈을 보고 있었는데 나를 후원해주는 사람이 생겼다. 그걸 빌미로 보육원에서 나오게 되었다. 후원금으로 방 한 칸을 얻은 뒤에, 내가 하고 싶은 걸 계속하면서 다녔다. 그러다가 지금 이 일을 얻게 된 거고.
아직도 만약,이라는 말로 그때의 궁금증을 내뱉기도 한다.
만약 내가 돈이 많은 집안에서 태어났더라면 그때처럼 가족들을 다 잃었을까.
만약 내가 돈이 많았더라면 병에 걸려도 가족들이 나을 수 있었을까.
만약 내가 약을 구해오지 않았더라면 가족들이 살 수 있었을까.
만약 내가, 행복해진다면 가족들이 좋아해 줄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