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erry Christmas!
돌아오지 않는 크리스마스
헨리&멜빈&캐럴 / w. 엔
"크리스마스에 뭐할 거야, 멜빈?"
들려오는 목소리에 문득 정신을 차려 고개를 들었다. 올려다본 그곳엔 웃는 얼굴로 바라보는 헨리가 있다. 어느새 닫아둔 창밖엔 가는 눈이 떨어지고 바닥엔 기계 부품들이 나뒹굴었다.
손에 들린 공구를 내려놓고 머리를 긁적였다. 집중하는 새에 많은 시간이 흐른 모양이었다. 밖은 어두워 그 모습만으로는 얼마나 시간이 흘렀는지 눈치챌 수 없지만 네가 있는 걸 보면 아주 늦은 시각은 아닐 테고, 손에 들린 우산은 눈이 올 때쯤 왔다는 거겠지. 아직 쌓이지 않은 눈과 옷에 남아있는 눈자국을 보면 도착한 시간은 얼마 되지 않았을 것이다. 생각을 마친 멜빈은 불필요한 질문 대신 눈을 깜빡이며 그의 질문에 집중했다.
"생각해둔 건 없는데… 크리스마스라고 특별한 건 없으니 오늘이랑 똑같지 않을까."
"멜빈이라면 그럴 거라고 생각했지만… 크리스마스인데? 데이트 같은 걸 기대한 건 아니지만 간만에 다른 걸 해도 좋지 않아?"
"그런 건 기대하지 마. 아마 평생 봐도 기대에 못 부응해줄걸. 너야말로 가족이랑 보낼 거 아니야?"
"그래도 색다른 대답 대신 평생 친구 정도면 괜찮은 것 같지 않아? 부모님이나 외할아버지는 바빠서 올해 크리스마스는 동생이랑 보내기로 했어."
태연한 네 대답에 못 이기겠다는 듯 혀를 내둘렀다. 뭐… 나쁘지 않은 생각이네. 이 날씨에 나갔다간 사람에게 치여 죽든, 얼어 죽든 둘 중하나일 테니까. 거기다 그가 평소에도 종종 자랑하던 동생과 같이 보내는 거라면 나름 괜찮은 크리스마스겠지. 생각을 하던 와중에어서 그럴까. 그의 말에 반응하는 게 반 박자 느렸다. 그래서 말인데 멜빈. 이번 크리스마스에 같이 놀지 않을래? 어차피 부모님도 바쁘셔서 캐럴이랑 나만 있을 건데.
뭐…?
잔뜩 기대에 차 바라보는 눈에 문득 네가 이 말을 하기 위해 처음의 질문을 했음을 깨달았다.
나쁘지 않을지도 모른다. 어차피 크리스마스 때 달리 할 일은 없으니까. 누군가와 있는 것보다 혼자가 편하긴 해도 헨리라면 괜찮다. 그는 다른 누군가처럼 침묵이 불편하지도 않고, 내게 무언가를 캐물으려 하지 않으며 천재나 기타 수식어들 때문에 친해지려 다가오는 부류들과 전혀 다르니까. 불필요한 만남과 거리가 멀다.
"... 글쎄..."
하지만 멜빈은 말을 멈추었다. 목구멍에 무언가라도 걸린 것 마냥 선뜩 수락의 말을 내뱉을 수가 없었다. 이걸 어색하다고 해야 할까? 부담스러운 걸까, 단지 낯설어서 그런가. 망설이자, 곧이어 헨리가 덧붙였다. 무슨 일이 생길 것 같다건 부담스럽다면 거절해도 돼. 헨리의 말에는 아쉬운 기색이 전혀 보이지 않았다. 머뭇거림의 이유를 낯설음이라 판단한 멜빈이 그제야 입을 열었다.
"…내년 크리스마스에는 꼭 갈게."
그는 무슨 일이냐고 묻지도 않고 웃으며 그래, 라고 내뱉었다. 캐럴도 네가 궁금할 거야. 강요하는 건 아니지만 두 사람도 잘 지냈으면 좋겠어.
비가 쏟아질 것만 같은 그 날의 옅은 하늘과 함께 네 목소리가 생각난 건, 그 해가 셋이 모일 수 있는 마지막 크리스마스였기 때문이다.
"... 오빠에게 많이 들었어. 멜빈 리히터라고 했지."
그를 닮은 밝은 레몬색의 금발이 흔들린다. 끝은 그와 다르게 서리진 것처럼 얼어붙었고, 닮은 듯 다른 올곧은 눈동자가 저를 빤히 올려다본 순간, 멜빈은 12월의 어느 날 그와 나눈 대화를 떠올렸다. 그는 자신이 다음 크리스마스 전까지 살지 못한다는 걸 알고 있었을까? 셋이서 만날 일은 결코 있을 수 없다는 걸, 그걸 알았다면 그 때 거절한 내가 원망스럽진 않았을까? 혼란스러운 머릿속에 퍼뜩 들어온 캐럴의 말이 상념을 일깨운다.
"그래. ...나도 종종 들었어. 캐럴... 이었지..."
하도 많이 들어서 잊어버릴 수도 없었던 이름이지만 직접 입에 담는 건 처음이라 문장을 완성하기까지 약간의 텀이 생겼다. 그러나 우리 사이엔 많은 말이 필요 없었다. 그걸 아는지 캐럴도 고개만 끄덕이고 리첼을 찾아 사라졌다. 그는 사이퍼 캐럴라인 맥고윈으로 더 호라이즌에 들어온 거겠지만 헨리 맥고윈이라는 사람을 지울 수 없기에 결국 서로에게서 돌아올 수 없는 자의 흔적을 찾을 테니까.
멜빈 역시 두고 온 기계 부품을 찾아 더 호라이즌의 멤버가 장식해둔 크리스마스 트리 앞을 지나쳤다.
타인과의 관계에 서툴러 낯설음이라 치부했지만 지금 생각하면 그것은 어느 정도의 이해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그의 능력상 헨리는 자신의 죽음을 예견했고,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그것을 받아들였으며 그 날의 제안은 단지 소중한 사람들과 함께 보내고 싶었던 건지도 모른다.
하지만 멜빈은 그 사소한 이상행동에서 도출될 결과를 외면했다. 문득 그 죽음에 대한 진실을 가장 먼저 알게 될 사람은 천재인 제가 아니라 그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반 넘게 쳐둔 커튼 사이로 떨어지는 눈처럼 옅게.